국궁 입단 당시 회고!
약 10년 전 우리 활을 배운지 6개월 전후의 일을 회고한다.
2000년대 초(2003년으로 기억됨) 가을(9월쯤)에 계룡 신도정에서 활을 배웠고
겨울을 나는동안 열심히 연마하여 5발 중 2~3발(50%)을 명중시킬 정도의 실력이 되었다.
이듬해 봄 입/승단대회에 나섰다.
천안 천궁정(지금의 아산역 근처이며 현재는 천안정으로 이전)에서 였다.
입단하려면 45발 중 25발(56%)을 명중시켜야 한다.
절차는 9순 경기였다. (5발이 1순이고, 3순씩 3회 즉 5*3=15발씩 3회를 반복한다)
첫번째 3순과 두번째 3순을 합하여 30발 중 16발(53%)을 명중시켰고
마지막 3순을 남겨놓았는데 합격하려면 15발 중 9발(60%)을 명중시켜야 했다.
즉 매순당 평균 3발씩 명중시켜야 했는데
처음 순에서는 5발 중 2발밖에 명중시키지 못했다.
이제 10발 중 7발(70%)을 명중 시켜야 하는데 당시의 실력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때 실망감과 함께 위기감을 느꼈지만 끝까지 해보자는 다짐으로 이를 악물었다.
줌손(활을 잡은 손)에 잔뜩 힘을 주고 한 발 한 발 시위를 당겼다.
그결과 두번째 순에는 5발을 모두 명중시켰고..
설렘을 억누르며 마지막 세번째 순에도
초시 명중, 재시 또 명중으로 7발 연속 명중시켜
오히려 3발을 남기고 기적적인 합격을 하였으니
그 당시의 하늘을 찌를 것 같던 감격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2011.5.12-
공중표적 최초사격 명중 (회고)!
1973 말~1974년 초로 기억된다.
초등(대전,T-41), 중등비행훈련(사천, T-28)은 생도신분으로 마치고,
1973년 3월 28일 공사 졸업 및 임관식을 가졌다.
소위 신분으로 4월부터 고등비행훈련 과정(광주, T-33)을 수료(9월 말)하고
최초로 배속 받은 곳이 광주 105전투비행대대였다.(10월 초)
당시 한국공군 최초의 초음속 전투기였던 F-5A를 운영하는 대대였다.
기종전환 훈련을 마치고 전투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작전가능훈련에 돌입했다.
공중전투기동, 공대지 사격, 공대공 사격 등 적과 싸워 이기기위한 훈련이다.
그 중 공대공 사격훈련 중 잊지못할 추억이 있다.
요즘의 최신 항공기는 조준기가 자동화 되어 표적을 정확히 조준하고 사격만 하면 명중된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전자장비가 발달하지 못하여 고정된 조준기를 사용했으므로
표적과의 상대적인 위치(거리, 각도, 속도차 등)에 따라
조준기 위치를 예상 비행항로로 계산하여 선도점에 위치시키고 발사해야 했다.
따라서 공중표적을 기관총으로 명중시키기가 어려웠다.
예로 선배조종사 중 한번도 명중시키지 못한 분도 있었고, 이따금씩 명중시키면 축제분위기였다고 한다.
이를 나는 최초의 사격에서 명중시켰으니 감동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도 50발 정도의 사격으로 3발을 표적에 명중시켰음을 비행대대장님께서 직접 확인하셨다.
이는 물론 운도 있었고, 나의 능력도 있었지만, 선배의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
즉 명중시킬 수 있는 방법을 정확히 전달한 것이었고 교육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201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