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매스컴이 만들어낸 '공공의 적'...정유라..

호천 2022. 5. 4. 22:51

매스컴이 만들어낸 '공공의 적'...정유라에 관해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모든 것

조민에게는 적어도 여전히 그녀를 지지하고 응원하며 촛불을 드는 세력이 존재한다.

그렇게 조민의 '아빠 찬스'는 여전히 작동 중이다.

하지만 정작 그때 정유라의 억울함에 맞서 조금이라도 동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마녀사냥의 희생물이 되었던 그녀를 위해 짱돌이라도 든 사람이 있었던가

유튜버 방송을 통해서 정유라 씨가 자신과 관련된 여러 가지 루머와 의혹에 대해서 직접 해명하는 방송을 보았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식을 키우는 아버지로서 너무 가슴이 아팠다. 한 젊은 여성이 자식 셋을 키우면서 짊어져야 했을 악성 루머와 거짓 속에 살아왔던 6년이란 시간이 너무나 길게만 느껴졌다.

"그 동안 저에 관해 쏟아졌던 모든 의혹과 주장은 다 거짓입니다. 심지어 법정에서 판사가 19살 여자 아이가 무슨 공범이냐면서 기소 유예를 결정하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지난 6년 동안 대한민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왜 우리는 광기어린 거짓과 선동에 무참히 농락당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 당시 정유라에 대해서 온갖 거짓과 음해를 일삼았던 정치 세력은 역사의 심판에서 정녕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가세연(가로세로 연구소) 유튜브에 출연한 정유라씨>

지금도 생생히 기억 난다. '대통령 탄핵'이란 거대한 음모의 시나리오들이 하나둘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던 시절, 최순실과 함께 공모혐의로 인터폴 적색 수배를 받고 인천공항에 끌려오던 정유라 씨의 모습을 말이다. 당시 그녀는 언론이 만들어낸 '공공의 적'이었다. 그래서 맨 얼굴에 수갑까지 찬 그녀에게 동정어린 시선조차 허락되지 않았었다. 오죽하면 2살짜리 어린 아들의 모습까지 그대로 노출되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 봤을까? 우리는 국정농단을 만들어낸 죄인(?)의 딸, 그 얼굴을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녀는 이번 방송을 통해 2014년 자신이 썼던 페이스북 글 하나가 국민들의 분노를 일으키고, 어머니 최순실 씨와 박근혜 대통령의 사이를 공모 관계로 엮게 되는 뇌관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울먹였다. 모든 시작은 조국의 트윗이었다.

'정유라,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있는 우리 부모 가지고 감놔라 배나라 하지 말고 돈도 실력이야."' (조국의 트위터 중)

그의 글이 지닌 위력은 대단했다. 국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젊은이들은 촛불을 들고 광화문 집회장으로 모여들었다. 정국은 소용돌이쳤다. 덕분에 근거도 없고 증거도 불충분한 대통령 탄핵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대한민국 국회가 발의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6일이었다. 얼마나 서둘렀으면 탄핵소추 발의안에 증거라고 하는 것들이 죄다 한겨레 신문 기사였다.

문제는 이런 비정상적 탄핵 의결 과정에 기름을 부은 요인들 중 하나가 바로 정유라의 2014년 페이스북 글이었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2016년 탄핵 과정과 무관했던 18살 여고생 정유라가 쓴 페이스북 글 하나가 전 국민적인 공분을 사게 만들어지는 과정은 어떠했을까?

바로 여기에 조국, 안민석을 비롯한 당시 좌파 정치인, 김어준를 비롯한 언론인의 탈을 쓴 한국의 괴벨스들이 등장한다. jtbc에서 안민석이 제기한 '숨겨진 자산 300조 의혹'은 김어준의 tbs '뉴스공장'을 거치면서 의혹이 아니라 사실이 된다. 다시 말해 300조 비자금을 숨겨놓은 최순실 덕분에 정유라는 '돈도 실력'이라며 겁없이 세상을 조롱할 수 있었다는 논리다.

조국이 조작한 트윗의 글과 안민석의 '300조' 루머는 이렇게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발화한다. 2017년 7월 26일, 당시 안민석은 방송에 나와 이렇게 말했다.

앵커(손석희): "이거 너무 좀 단순한 질문일지 모르겠는데요. 그렇다면 안민석 의원이 지금까지 파악한 최순실의 은닉 재산은 대략 어느 정도나 된다고 추정을 하십니까?"

안민석: "그것은 단언하기 어렵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통치자금 규모가 당시 돈으로 8조9000억 원, 지금 돈으로 300조가 넘는 돈입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부터 최순실 일가 재산의 시작점을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안민석은 줄기차게 있지도 않은 '300조 비자금'이 박정희에서 최순실 일가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어이없게도 현재 소송을 당한 안민석은 자신의 '300조' 주장이 유튜브를 인용한 것이라며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부디 법정이 정의를 바로 세우리라 믿는다.

일주일 뒤인 8월 3일, tbs 김어준은 '뉴스공장'을 통해 안민석의 주장을 다시 한 번 더 사실로 기정사실화시킨다. 김어준의 팬덤을 등에 업은 '정유라' 관한 거짓 소문은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문제는 2014년 정유라의 페이스북 글은 승마 선수로 승승장구하던 자신을 시기하던 또래 여고생들에게 날린 별 의미도 없는 감정 표현이었다는 사실이다. 2014년 실제 그녀가 올린 글의 원문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있는 우리 부모 가지고 감놔라 배나라 하지 말고 돈도 실력이야. 불만이면 종목을 갈아 타야지. 남 욕하기 바쁜 니깟짓 *들이야 아무리 다른 거 한들 성공하겠니?"

여기서 주목할 점은 조국의 2016년 트윗에는 존재하지 않은 뒷 문장이다. "불만이면 종목을 갈아 타야지. 남 욕하기 바쁜 니깟짓 *들이야 아무리 다른 거 한들 성공하겠니?".

정유라의 글은 돈 없는 서민을 조롱한 글이 아니었다. 그건 단지 자신을 시샘하고 질투하던 친구들을 향한 여고생다운 불만을 표출한 것에 불과했다. 그건 300조 재산을 둔 최순실, 대통령을 쥐락펴락했던 국정농단의 실력자를 부모로 둔 뻔뻔함이 아니었다. 국민을 분노하게 만든 것과는 전혀 상관도 없는 글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녀가 이 사실을 세상에 공개하는데 6년이 걸렸다. 그 오랜 세월 그녀는 대중과 언론, 친구와 이웃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삶은 찢겨졌다. 그녀는 증언을 마무리하면서 울먹이며 말했다.

"자신으로 인해 피해를 입으신 모든 사람들, 이대 교수님들, 어머니,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께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어떤 사람은 조민이 저렇게 돼서 통쾌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똑같이 고통받은 거예요. 제가 바라는 건 오직 하나입니다. 더 이상 거짓으로 저 같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더 이상 없는 말 지어내는 국회의원들 나오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솔직히 그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아팠다. 혹자는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조국의 딸 조민과 정유라를 평행이론에 빗대기도 한다. 공교롭게도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하지만 정말 다른 것은 조민과 정유라를 대하는 대중의 시선이다.

조민에게는 적어도 여전히 그녀를 지지하고 응원하며 촛불을 드는 세력이 존재한다. 그렇게 조민의 '아빠 찬스'는 여전히 작동 중이다. 하지만 정작 그때 정유라의 억울함에 맞서 조금이라도 동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마녀사냥의 희생물이 되었던 그녀를 위해 짱돌이라도 든 사람이 있었던가.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1시간 넘게 그녀의 말을 들으며 가장 마음이 많이 아팠던 것은 말로만 '정의'를 외치고, '진실'을 찾겠다고 했지만, 정작 제대로 실천한 것 없는 초라한 나 자신의 모습과 마주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정유라 죽이기'에 침묵했던 공범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어쩌면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는 이렇게 거짓과 선동 속에 감춰진 진실들이 수없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그 거짓과 프로파간다 속에 대한민국 건국의 지도자들에 대한 왜곡된 역사가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을까. 이제부터라도 부디 그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 왜곡된 역사관에 기초한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극복하고 우리가 다시 정립해야 할 것은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 아닐까 싶다.

2022-04-28
김덕영 객원논설위원